"나의 설날, 그리고 우리의 설날"

강아지반 담임,

이 종 임

설날 아침!

내가 어릴 때, 우리 형제, 자매들은 설날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분주하다. 얼른 고양이 세수를 끝내고 엄마가 방 한 켠에 가지런히 놓아둔 설빔을 찾아 입는다. 최고의 설레는 날이다.

연중 최고의 한복 성장을 하고도 여느 때와 똑같이 사랑채에서 벗어나시지 않는 할아버지, 큰엄마의 현대적인 센스로 누구보다 세련된 한복 정장을 즐기시던 큰아버지, 넥타이에 양복 정장을 차려 입은 작은 아버지들… 대청마루 한 켠에서 최고 사령관이신 할머니의 차례상 지시에 따라 부엌의 큰/작은 엄마들은 한복 자락을  질끈 올려 맨 채로 일사불란한 모습이다. 정말 풍성하고 근사한 아침풍경이다 (사실, 우리 큰/작은어머니들의 명절 노동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 이러한 새해맞이 대 가족 풍경속에서 나도 한점이 되어 항상 들뜨고 즐거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차례와 아침식사후의 행사가 나를 설레게 한다. 설날 세배, 본인의 집에서 차례를 지낸 후 합세하는 고모부까지 십여명이 되는 어른들은 세뱃돈을 잘 분배하도록 준비 하였었다. 집안에서의 세배가 끝나면 우리는 십여분을 걸어서 작은 할아버지 댁으로 세배를 간다.

그 시절 내가 궁금했던 것은 작은할아바지, 작은할머니께서도 차례를 지내는 사실이었다. 우리할아버지와 같은 부모와 조상이고,  우리 할아버지댁에서 차례를 지내는데, 누구를 위해 차례를 지내는 것일까? 어린 나에게 그것을 묻기에는 거대한 가족이란 한국적인 틀이 무언가 너무 대단해 보여서 그냥 비밀같은 질문으로 간직했었다. 나중에야, 본래의 작은 할머니께서는 아들 둘을 낳으시고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할아버지께서는 작은할머니를 새로 맞으신 것이었고, 돌아가신 작은 할머니를 위한 설날의 차례였던 것이었다. 번듯하게 성장한 그 아들 둘은 새 엄마에게(나에게는 작은 할머니께) 참으로 효자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콩쥐팥쥐”의 새엄마 틀에서 벗어나기에 너무 어렸다. 그래서 내가 그 사실들을 알았을 때 상상하지 못했던 것에 오래 놀라웠었다. 설날이면 그 당숙(아버지 사촌)들은 본인의 집 차례를 지낸 후 우리 할아버지께 세배를 오고, 즐거운 설날 놀이에 합세를 하곤 했다. 윷놀이 판이(사실 ‘고’ 하는 카드놀이가 좀 더 많았다) 두 서너 개로 나뉘어진다. 한번 잘 이겨서 돈을 딴 어른은 일부의 딴 돈을 꼭 아이들에게 분배해 주었기 때문에 어느 판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 했다.

이제금, 나는 가끔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나의 가족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힐 때가 있다. 그립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가끔 흉내를 내 본다, 우리 학생들과 함께.  

설날 경험 여행을 우리 학생들과 떠난다. 유툽의 방아간에 들러 흰 가래떡이 뽑아져 나오는 것을 바라본다. 가래떡을 구워 조청에 찍어 먹었다 한들 학생들은 이해를 할까나?  교육자료의 차례상을 둘러 보고 떡국을 먹는 날을 즐겨본다.

윷을 준비한다.  초콜릿도 준비해 본다, 내가 받은 그날의 잔돈처럼 무엇을 받는 즐거움이길 바라면서.

설날의 수업은 마치 나를 위한 날인 것 같다. 내가 잠시 일상을 벗어나 그 때 그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나며 우리 학생들을 대동한다고 할까나? 나의 설날이 조금은 우리의 설날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학생들이 “우리(한국고유)”의 체험에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래서 가슴이 더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