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y Kim 의원의 어머니, 장재순 여사의 글

내 아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고요함을 느낀다. 고요함속에 강한 의지가 있는…

그는 어릴때 무척 수줍어하는 아이였다.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다가도 집에 가자고하면 하던 놀이를 멈추고 떼쓰지 않고 일어섰다. 누나를 많이 따랐고 같이 잘 놀았다.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그는 야구와 축구를 좋아하고 커서는 테니스를 잘했다. 어릴 때 Little League 팀에서 축구를 할 때 였다. 아들은 몸집이 약하고 작은편이어서 빠르고 날쌔게 뛰었다. 그래서 코치가 Left Wing 에서 공을 차게 했다. 열심히 연습하여 다른팀과 경기도 하고 시즌이 끝날때 상을 주었다. 난 아들이 그순간을 초조히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도 마음이 초조했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가장 열심히 노력한 선수상을 받은 것이었다. (Most Dedicated Player) 그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South Jersey Youth Orchestra 에 Cello 연주자로 1 st Seat에 선발되었을 때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는 커갈수록 수줍음이 없어지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열심이었다. Cherry Hill High School East를 졸업하고 전형적인 대학이 아닌 Deep Springs College를 택한 것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새로운 무엇을 찾아간 것이었다. Deep Springs 대학에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양성시키고 인도주의적인 또 커뮤니티를 위해 자신을 단련시키는 과정에서 아들은 자신의 인생의 목표에 새로운 전환점을 찾게 되었다. 아들은 얘기했다.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었고 훌륭한 지도자들을 책속에서 만났다고 했다. Deep Springs 을 졸업하고 Truman Scholar 로 선정되었고 Chicago 대학으로 가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Chicago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노숙자를 위한 Project 에 관계했고 여름이면 Washington DC에서 Internship을 했고 Part time 일도했다. Chicago 대학을 졸업하고 명문 높은Rhodes Scholar 로 선정되어 2005년 9월에 영국 Oxford 대학에서 꿈을 펴기 시작했다. International Relation으로 박사학위를 끝내고 국무성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들의 본격적인 Public Servant로서의 일은 시작되었다.

영국 Oxford 대학으로 가기전, 2005년 7월에 그는 Africa로 6주동안의 배낭여행을 혼자서 갔다. 약간의 여비를 스스로 준비하여 노란색의 큰 Backpack을 메고 떠났다. 아주멀리 낯선나라로 그것도 아프리카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 무척이나 불안했지만 허락했다. 아들은 여행하는동안 이메일로 소식을 주었다. 소식이 몇일 늦어지면 불안하여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지만 아들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외부의 관광객들이 많이 가지 않는 8개국의 나라를 거처서 몇번이나 위험한 상황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보고 듣고 돌아왔을때는, 그가 많이 커 있음을 그을른 얼굴에 유난히 반짝이는그의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2005년 9월30일 Oxford 대학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배움과 생활이 시작된다고, 그곳은 너무도 아름답다고, 이메일로 보내왔다. 10월 이메일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주최하는 그 해 미국 뉴올렌스에 큰 재난이었던 Hurricane Katrina Benefit Concert 에 아들이 기타를 연주하게 되어 연습한다고 했다. 그는 언제나 남을 위한 일을 찾아 했었고 시간을 낭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씩 기타나 Cello 연주로 Concert에 가담하기도 한다. Oxford 에 있으면서 시간을 내어 유럽의 다른 나라로 여행을 많이하고 대학에서 그의 아내 Kammy를 만났다. 2006년에는 한국을 들려 Oxford 대학 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터뷰를 했었다. Oxford 에서 그의 정치적인 꿈과 발돋움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어릴 때 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조용히 일을 해내는 아들은 여름방학 때마다 멀리 집을 떠나 Music Camp 나 Science Camp 에 가서 지내곤 했다 . 때론 집이 그립다고 전화하고 했지만 잘 견디어 내었다.

나의 아들을 위한 기도는 ‘이 사회에 크게 쓰임 받는 아들이 되게 해달라고’… 왜 그런 제목으로 기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아주 어릴적 부터 나는 그런 기도를 해 왔었다. 아들이 국무성에서 근무 했을때 아프카니스탄에 가서 사령관 전략 참모로 일할 때 였다. 그는 현황을 자세히 알아야 하기에 때로는 밤중에 헬기를 타고 군사기지에도 가곤 한다고 했다. 언제나 위험이 따르는 전쟁터에서 일하던 중 어느날 미대사관과 군사기지에 폭탄이 터지 면서 적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폭탄으로 인해 온몸이 날려서 떨어지고 옆에 사람들이 부상을 입고 죽는 것을 보면서 아!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그 후에 그는 말했다. 이곳에서 나는 그곳의 폭격 소식을 듣고 아들의 소식을 알 수 없어 불안하고 초조하게 밤을 새고 나니 다음날 아침에 아들이 전화를 했었다. 다행이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 일하면서 그 전화를 받고 난 동료에게 엎드려 울었다. 아들의 무사한 안도와 감사의 눈물이었다.

얼마후에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백악관에서 근무할 때 하루 14-16시간씩 일하고 밤중에도 불려나가는 것을 지켜볼 때 왜 아들은 저런 힘든 일을 택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도 난 계속 같은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의 아들과 딸이 이 사회에 크게 쓰임 받는 아들, 딸이 된다면 그이상 더 큰 보람과 성공이 없을 것 같아서 이다.

2017년 5월 온 가족이 아들집에 모여 아들의 연방하원 출마를 두고 의논 할 때 그의 빛나는 눈을 보고 그의 신념과 열정을 알았다. 여태껏 쌓아온 그의 경력과 노력이 빛을 보아야 할 때라고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떨리고 겁이 났었다. 아들에게는 그자신 외에는 돈도 집안도 그를 뒷받침 해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온 가족이 가담한 선거운동, 기도와 서로의 격려와 고통과 애로와 눈시울이 뜨거운 순간들을 지내면서 또 천사같은 애기들은 커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들의 선거출마는 시작되었고 그의 무서운 노력이 시작되었다.

지난 100년간 민주당 연방하원의원이 꼭 한번 (2008) 있었던 공화당 텃세 3구에서 현역 2번을 지냈고 3선에 나선 돈이 많고 현 대통령 트럼프가 밀어주는 거장의 MacArthur 를 물리치고 아들은 승리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주위사람들의 말을 무산하게 하고 20년만에 한인들의 숙원이던 2세의 연방의원이 탄생되었다. 

난 내아들의 능력과 신념과 열정을 믿는다.

딸이 박사학위 논문 평가를 끝내고 교수들을 모시고 파티를 한 자리에서 어느 교수가 말했다. 한 사람이 성공하려면 세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는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셋째는 좋은 성품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어떤 일로도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일이 가까워 지면서 가족모두 마음을 조이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뉴욕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딸도 마침 세바티카를 받아 한 학기를 쉬면서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애기들도 보면서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Event를 끝내고 밤늦게 돌아온 아들은 쓰러질듯이 나에게 안기면서 피곤하다고 할때는 시험공부를 할때 어릴때의 아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아들은 잘 버티어 주었다. 그렇게 거센 반대편의 거짖 광고 공세에도 견디어 주었다. 2018년 11월6일 선거날 밤 1시까지 결과가 나지 않아 몇 백명이 모인 Westin Hotel 에서 아들이 연설을 했다. 아직 결과는 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이길 것 이라고 확신하는 당당한 Speech에 나도 감격하여 눈물이 났었다. 그 많은 사람들도 희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 갔으리라.

2018년 11월 7일 오후 4시쯤 손자 아기들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빨리 준비하고 애기들 데리고 Mt. Laurel Office 로 오라고, 오늘 저녁에 승리를 선언 할 것이라고, 나의 온 몸이 후들후들 떨렸었다. 사돈되시는 분과 같이 애기들을 빨리 준비시켜서 달려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흥분 속에서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차장까지 꽉 차있었다. 아들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자들 앞에서 선거의 승리를 선언 했다. 눈물이 어린 그의 눈빛과 떨리는 음성의 연설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들은 자신을 믿고 후원해준 그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2019년 1월 3일, 국회의사당에서 선서식을 마치고 그의 염원해 오던 꿈을 펼치고 이 사회를, 나라를 위해서 일 하는 것이 시작되었다. 지금 그는 혼자서 이룰수없는 과업을 안고 호소하고 있다. 모두 같이 도와주면서 이루어가자고, 그가 이루고자 하는일은 결코 그만이 이루어야 할 사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사명이고 숙원이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한 숙제이기도 하다. 며칠전 숲길을 산책하다 겨우내 언땅을 비집고 나온 파란 새싹을 보고 아들 같다고 생각했다. 이 새싹이 햇볕을 받아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간절히 빌어본다.

장 재 순

"아들을 위한 기도"

사막의 꽃 한송이도

길 잃은 철새 한 마리도

외면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순간도

사막의 흙 냄새를 맡으며

일하고 공부하고 있을 나의 아들을 찾아주소서.

선인장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서 있는

Nevada 사막길을 끝 없이  달리다

암벽의 붉은 산을 넘고 또 넘으면

산으로 둘러쌓인 넓은 계곡에

푸른 초원이 꿈처럼 자리한 곳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아들을 찾아 주소서

성급한 새벽안개가 아들을 깨우면

눈 부비고 일어나 젖소들을 깨우며

우유를 짜고 있는지,

동료들의 아침을 만들고 있는지

말을 타고 가축들을 풀밭으로 몰고 나가는지

주님, 이 순간 알수 없으나

부디 그와 같이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