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통일을 위한 떨림, 울림 그리고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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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졸업생

김 명 훈 (Hoon Kim)

언젠가 한국학교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이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라는 노래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었고 쉽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가장 크고 주요한 소원과 목표는 많은 고통과 수난, 안타까움이 있었던 과거의 역사를 극복하여 자유 민주국가로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어 선진국의 열에 들어가거나 혹은 세계 최고의 기술 국가로서의 성공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지난 70여년 동안 지리적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아빠와 함께 이 노래에 해 진지하게 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좀 더 다른, 도저히 내가 알 수 없었던 무수한 이야기들이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돌보심 속에서 많은 사랑과 기를 한껏 받고 자라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라난 동네와 주변의 어른들을 통하여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깊은 슬픔과 ‘한’이 있다는 것을 점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도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하여 그 동네의 많은 어른들은 한국의 6 ꞏ 25 전쟁 전후로 북한 땅에서 한민국의 남쪽으로 피신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공산주의의 피비린내나는 악행과 모든 것이 파괴된 고향을 등지고 멀리 남쪽으로 무조건 발길을 옮겼던 아픈 삶의 과거를 가슴에 안고 살고 계셨던 분들이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가족을 잃은 깊은 슬픔, 고향을 등지고 다시 돌아가기 힘든 현실의 삶에서의 아픔과 고독, 마치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던 그들의 쓰라린 ‘한’이 마음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야 했고 자녀들을 키우며 치열한 삶을 이루어 가는 그들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쁨이요, 희망이며 기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아빠도 처음에는 깊이 그들의 애환과 소원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을 통하여 정말 그들의 마음 속에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26여년 전 한국의 KBS 방송국에서 방송한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통하여 힐아버지와 할머니는 혹시 친척 중에 누군가가 살아있지 않을까를 소망하며 밤을 지새우며 방송을 보았습니다. 당시 아빠도 이것을 함께 시청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할아버지와 할머니께는 더 많은 눈물이 있을 뿐이었고 그 염원과 소망이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근 한 달동안 TV를 보셨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크난 큰 슬픔과 더욱 큰 ‘한’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때 아빠도 그들의 슬픔과 고통, 안타까움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처절한지 옆에서 지켜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그 전쟁을 통하여 모든 가족들이 몰살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안은 꽤 괜찮은 편이어서 이미 전쟁 전부터 공산당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역사 교과서를 통하여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이러한 아픔의 시간들 때문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단지 지리적인 통합이나 이름만의 통일이 아닌 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지리적인 통일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통일은 그 분단의 역사 속에서 있었던 모든 고통과 슬픔들을 극복하고 치유되어 이러한 아픔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통일임을 믿습니다. 어느 나라이든, 어느 개인이든 그들의 역사 속에는 다양한 형태의 아픔과 ‘한’이 있겠지만, 70년이 넘도록 분단되어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아픔이 치유되거나 ‘한’을 풀지 못한 채 살아왔었고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저에게도 깊은 떨림과 울림, 어울림이 다가왔습니다.

먼저, 아픔과 ‘한’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들이 이것을 지닌 채 살아 온 방식은 미국이라는 거한 나라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 저의 사고와 삶의 태도를 바꾸는 ‘떨림’이 되었습니다. 분단된 나라에서 고향을 등지고 마치 이방인처럼 살아 온 그들,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아픔과 ‘한’이 가슴 깊이 새겨진 못같았지만, 그것들을 승화시키며 살아오셨던 분들이었습니다.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기 위하여 그들의 삶에 진지하며 열심으로 살아왔습니다. 빈 손이었지만 그 두 손에 많은 결실을 맺기 위해 많은 땀을 흘리며 맨 바닥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처절한 ‘한’이 있었지만 그것에 짓눌리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이루기 위해 자녀들을 위해 힘을 다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제 아빠도 그러한 의미의 선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과 기를 받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기를 한껏 받고 자라나신 분들이 성공한 케이스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국 땅은 아니고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이 아픔을 승화하고 그 소망들을 이루기 위한 ‘떨림’이 제게도 다가왔습니다. 이제 학에 진학하여 새로운 도전의 길에 들어서는데, 한국인의 정체를 잃거나 잊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서 현재의 자리에서 바르게 서는 것이 바로 이들의 ‘한’을 승화시키고 조국 한민국의 진정한 통일을 위한 길임을 깨닫습니다.

또한 이 ‘떨림’은 현재의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미국 사회에 있지만 한민국의 후예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며, 더 나아가 미국 사회에 공헌을 하며 장차 자유 민주의 바탕에 서 있는 한민국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진정한 통일을 위하여 한 귀퉁이에서나마 섬기고 공헌을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 한민국의 통일을 위한 ‘울림’임을 깨닫습니다. 아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살아 가면서 제 본분을 다하고 비록 작은 희생이라 하여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한다면, 진정한 통일을 위한 저의 ‘울림’은 더 커져 나아가리라 생각됩니다. 아직은 저도 가진 것 없는 빈손이고 지혜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 ‘떨림’을 제 삶 속에서 ‘울리도록’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힘을 다한다면 진정한 통일을 위한 작은 ‘울림’이 되리라 믿습니다. ‘울림’이 있기 위해서는 저의 삶과 진정한 통일과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지속하고 제 삶에서 진정한 통일의 가치가 ‘울리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이 ‘떨림’과 ‘울림’이 지속된다면 많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어울림’이 생기리라 생각됩니다. 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분단의 아픔과 ‘한’을 승화시켰던 치열한 삶 속에서의 분투는 비록 미미하고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지만, 한민국의 발전과 진정한 통일을 위한 하나의 작은 모퉁이 돌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이러한 많은 피난민들의 많은 작은 모퉁이 돌들이 모여서 한민국의 성장과 진정한 통일을 위한 큰 초석이 되는 ‘어울림’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 ‘떨림’을 가슴에 간직하고 제 삶 속에서 ‘울림’으로 나아가게 하며,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이 ‘울림’을 함께 만들어 가는 ‘어울림’을 통하여 진정한 통일에 작은 공헌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를 넘어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진정한 통일을 위해 우리의 ‘떨림’과 ‘울림’을 공유해 나갈 때 아름다운 ‘어울림’을 만들어 진정한 자유 민주의 한민국의 통일을 이루는데 힘을 보탤 수 있으리라 굳게 확신합니다.

다시 깊이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도체 무슨 의미인지 제로 알지 못했지만, 그 뒤에는 이야기되지 않았던 많은 아픔과 ‘한’의 역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역사의 현장에 계셨던 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그것들을 극복하고 승화시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워 왔던 그들의 삶과 의식을 듣게 됨으로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진정한 통일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떨림’으로 제게 다가왔고, 그 ‘떨림’은 제 삶 속에서 어떻게 소리를 내고 표현할 것인가의 ‘울림’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 ‘울림’을 수 많은 젊은 한인 청년들에게 전달함으로 진정한 통일을 위한 ‘어울림’으로 만들어 가야 함을 다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