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년 축하의 말씀"
이사장
정 자 량
먼저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가 40주년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 동안 수고하신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에게도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한인들이 이민 온 후로 많은 세월이 흘러 우리 2세들과 3세들이 이제 이 땅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라는 우리 자녀들에게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미국 땅에서 자라는 우리의 2세들과 3세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혼란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는 지난 40년 동안 우리의 자녀들에게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최선을 다해서 달려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어려운 과정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학교가 통합되기 전까지는 이지역에 10여 한인교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육과정과 교육시설을 가춘 한국학교는 1-2개에 불과했습니다. 이지역 한인 청소년이면 누구나 학국학교를 다니는것이 여러사람들의 염원이었습니다. 통합된 정규한국학교 하나로 합쳐서 어느교회 학생이나 다닐 수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었는데, 드디어 이사진과 목사님들이 참여하는 학교 통합위원회를 조직하고 통합준비를 위한 회의를 매주모인 결과 드디어2009년 통합결의를 하고 새교장 김치경선생님을 영입하여 새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 헌신적인 이사님들과 교장 선생님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이 지혜롭게 모든 어려움을 잘 극복해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우리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의 위상이 놀랍도록 달라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학교는 한글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전통문화를 교육하고 학습해왔습니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좀 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갖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최근에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온 열매들일 것입니다. 특히 지난 해 ‘한인의 얼’이라는 주제로 주최했던 문화행사는 우리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의 역량과 위상을 지역사회를 넘어서 미국 한인사회에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우리 학교가 넘어야 하고 해결해야할 많은 숙제들이 있습니다. 좀 더 양질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환경들을 최선을 다해서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 이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학교를 도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미국시민으로 당당히 살아가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는 학교가 되게 할 것입니다.
본 학교가 설립된후 많은 수고를 해주신분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979년 설립때뿌터 지금까지 이사장으로는, 박상원, 이종완, 김성태, 이무웅, 고행석, 송재경 , 김훈, 이지상, 김정열, 정자량,
교장으로는 김치경, 형경자, 김영자, 정천혜, 정안젤라, 김정숙님들 (존칭생략)입니다.
이와 같은 학교의 발전은 이지역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의 협조와 참여가없이는 불가능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수고하셨고 앞으로도 수고하실 모든 이사님들과 교장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40주년을 맞는 한국학교에 대한 소회"
부이사장
서 주 갑
가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자식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 놓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곳에는 부모 자식간에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이민 1세대도 많다’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자식과의 대화도 청소년기에는 힘들다고 하는데, 다른 언어를 쓰는 이민 가정은 얼마나 힘이 들까? 옛날 이민 1세대는 자신들이 언어 때문에 겪는 미국 주류사회에서의 소외감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부모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치는데 소홀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해 온 경향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 결과 나이가 들어 가족 안에서도 특히 자식과의 관계에서 깊은 대화없이 살아가는 이민 선배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아왔다.
제 아이를 통해 한국학교의 문을 두드린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적어도 언어의 차이로 인해 아이와 대화가 단절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처음에는 한국학교가 통합되지 않아서 여러 곳 가운데 제일 큰 학교에 등록을 시켰다. 언어교육은 단계별로 이루어 져야하기에 학생수가 많은 곳이 잘 가르치 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도 결과는 실망이었다. 교육과정의 반도 나가지 않았을 뿐더러, 그 다음해에도 전년에 배웠던 “ㄱ,ㄴ,ㄷ…” 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한국학교가 통합되어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실망감은 그대로였다. 아마도 통합된 한국학교에 기대가 너무나 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토요일 날 하는 스포츠를 간절히 원하기도 하였고, 한국학교에 보내는 대신에 내가 직접 가르치기로 하였다. 한글 “ㄱ,ㄴ,ㄷ,ㄹ…”을 끝내고 한국 동화책을 수시로 읽게 하였다. 그렇지만 학교에 적을 두지 않았기에 한국어 교육은 뒤로 미루어지고 갈수록 대화는 영어로 하게 되었다. 나중에 커서 엄마, 아빠랑 계속 대화를 하려면 네가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를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아이는 한국어를 배워야할 절박한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아이가 4학년 때 처음으로 한국의 가족을 방문하게 되었다. 많은 한국의 친지들 그리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촌 형제들, 조카들을 만나 함께 하면서, 말로만 들었던 부모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였다. 그러면서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한국학교에 다시 등록하였다. 한국학교가 예전보다 훨씬 나아져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 고등학교 과정에 들어가서 한국학교에 대한 시련이 다시 찾아왔다. 초등학교 과정은 각 학년별 교재가 명확해서 해마다 아이의 한국어 실력이 나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 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한국어 실력은 그대로였다. 일정한 교재 없이 그때 그때 선생님이 준비해 오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에, 부모로서 확인하고 독려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답답하였다. 배운 것을 복습하고 미리 예습할 수 있는 교재나 자료가 없다 보니, 한국어 공부에 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되는 것 같았다. 또한 한국어 수업에 연결성이 떨어져서 한국어 실력이 단계적으로 향상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어 교육보다 고전 문화 교육에 더 큰 초점이 맞추어 지는 것 같아서 학부모로서 불만이 싸이기 시작하였다. 거기다가 한국학교가 있는 토요일 날 이루어지는 학교 스포츠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아이가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때는 부모의 권위를 내세워 강제로 보내고, 어떤 때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 뒤에 보내고 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작년에 한국학교에서 제 1회 “한인의 얼” 을University of Pennsylvania 공연장에서 김덕수 사물놀이 팀을 초청하여 과 개최하였고, 여기에 한국학교 학생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 공연을 보는 순간 문화 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니냐는 부모로서의 불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히려 속 좁게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제 아이도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아주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제 아이가 저처럼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한고 한국의 문화를 우리 문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볼 때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국제 운동경기 때 같이 한국선수들을 응원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학교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언어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이해하게끔 만들어 준 한국학교의 교육 방향에 찬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학부모들의 1차적인 바램 즉 자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추는 것도 소홀하지 않았으면 한다.
40주년을 맞는 남부 뉴저지 통합 한국학교가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게 애쓰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한국학교가 이 지역사회에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널리 알려 한국의 모든 것들이 전혀 생소하지 않고 친숙한 것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학교 출신의 자녀들이 Korean- American으로서 자부심과 정체성을 갖고 주류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한국 이민자들이 문화적으로 소외됨이 없이 당당하게 우리를 표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서주갑 ; 상어반 학부모
"한국학교의 품격"
뉴저지 열방교회 (ANC)
전우철 목사
몇년 전 미국의 어느 한인목사님께서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중고책방에서 새책으로 사주었을 때 저는 작가 이기주님을 글로 만났었습니다. 그때의 만남이 소중하였기에 또다른 만남의 자리를 늘 고대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국에서 결혼식 주례와 세례식 집례를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하는 길에 인천공항 책방에서 이기주님과의 재회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의 품격’
말의 품격 책 첫장에는 이렇게 제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말의 품격’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나만의 채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형은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p.5)
벌써 남부뉴져지지역의 여러 한국학교들이 한개의 학교로 통합된지도 벌써 10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통합한국학교는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참으로 많은 성장과 팽창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이 ‘한글, 역사, 문화, 음악, 춤과무용 기타등등’으로 ‘한국학교의 존재이유’라 할 수 있는 ‘KOREAN-AMERICAN의 정체성(IDENTITY)’를 잘 세워서 자라나게 하고 있음을 목격할 때 지역교회의 목사로서 ‘이렇게 좋은 한국학교가 이 미국땅에서 또 있을까’ 증언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제 또다시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통합한국학교에 이런 기대를 해 봅니다. 지난 10년간의 한국학교의 질적 양적 성장을 넘어서 ‘말의 품격’ 책에 대한 내용처럼 ‘한국학교의 품격’을 세워서 남부뉴져지 지역뿐만아니라 미국전체의 한국학교들에게 ‘고유한 채취, 고유한 향기’를 더 끼쳐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개신교 천주교등의 리더분들이 ‘통합’이라는 비젼을 지키기 위하여 ‘교리와 교파’를 넘어선 통큰 화합을 해 주심에 감사하며, 특별히 ‘통합’이라는 특수성때문에 불편한 점들이 많이 있을터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의 품격’을 세워오신 김정숙 교장선생님과 정안젤라 교감선생님 그리고 모든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이분들을 지원하고 축복해 오신 정자량 이사장님 서주갑 부이사장님과 김치경 총무이사님을 비롯한 모든 이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부 뉴저지 한국 학교 개교 4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체리힐 한인 천주교회
김도윤 프란치스코 신부
우리 인생에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답니다. 마치 활 시위를 떠난 화살이 절대 되돌아 올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첫째는, 입 밖으로 나온 말이고,
둘째는, 흘러간 세월입니다.
그리고 세째는, 놓쳐버린 기회입니다.
그리스 시라쿠라 거리에 가면 아주 유명한 동상이 하나 있습니다. 날개달린 남자의 동상인데, 아주 우스꽝스럽게 생겼어요. 앞머리는 머리숱이 엄청 많고 깁니다. 그런데, 뒷머리는 대머리예요. 그리고 발에는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생김새의 동상을 보고는 “이게 뭐지?” 하고 다를 웃고 맙니다. 그러다가 그 밑에 쓰여있는 글귀를 읽어보면 모두들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이렇게 쓰여 있대요.
“나의 앞머리가 길고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사람들로 부터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한 것입니다.”
“나의 이름은 ~”
“기회입니다.”
이것이 ‘기회’라는 것입니다. 쉽게 잡을 수도 있지만, 놓쳐버리고 나면 절대 다시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나가고 나서 후회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기회’는 바로 지금입니다. 내일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뻐하고, 행복하고, 그리고 감사할 기회는 바로 지금 뿐입니다.
유명한 뉴스 앵커였죠. 데이빗 브린클리 (David Brinkley)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은 가끔 우리 앞에 빵대신 벽돌을 던져 놓기도 하는데, 어떤 이는 그것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그 벽돌을 걷어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벽돌을 주춧돌 삼아 집을 짓기도 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고난이라는 벽돌은 다루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에 따라 행복의 기초가 될수도 있고, 불행의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40년의 세월 동안, 여러 어려움과 역경을 극복하고, 훌륭한 한국인 인재 양성에 크게 이바지해 온 남부 뉴저지 한국 학교 개교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헌신해주신 선생님들, 봉사자들, 후원자들, 학부모님들, 학생 여러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개교 40주년을 계기로, 세상과 사회에 필요한 한국인 인재를 양성하는 좋은 학교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길 기도드립니다.
"남부뉴저지 통합 한국 학교 40주년을 축하 합니다!"
체리힐 새행전교회 (CIA)
최무림 목사
최근에 중남미에 있는 나라인 리카라과에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현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현지 한인 선교사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약 6,000명 가량의 한인이 살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재원들과 여러 직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주로 봉재 공장에 종사하시는 분의 가족들이 많이 사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도 중심에 있는 한인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제게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한국학교에 대한 활동이 게시된 게시판 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학교가 얼마나 활성화 되고 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자녀들은 거의 학교는 미국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영어로 공부하고 집 밖에 언어는 스페니쉬를 쓰고 가정과 교회에서는 한국어를 쓰기 때문에 한국가정의 자녀들이 이 세 가지 언어를 거의 자유롭게 말하고 읽고 쓰고 하여 선교팀이 오면 거의 통역요원으로 쓰임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어는 거의 한국학교가 담당을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학교가 시작 된지 벌써 17년이 되어 많은 학생들을 배출하였다고 자랑을 합니다. 17년의 한국학교를 끊임없이 지속하였던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른답니다. 그런데 남부뉴저지에 있는 통합 한국학교가 17년이 아니라 40주년을 맞이한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럽기 한이 없는 것입니다. 처음 한국학교에 10살에 입학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벌써 50세 라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사회에서 많은 일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간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한국학교를 통하여 한국어를 알고 한국의 문화를 배우며 자랐던 것이 사회에서 결코 헛되지 않은 배움이었을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국학교를 위하여 그동안 수많은 선생님의 수고가 있었을 것이고 필요한 물질을 모으시느라고 많은 이사님들과 교직원들의 수고 하였을 것이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40년을 이끌어 온 모든 관계자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과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순간순간을 우직하게 이끌어 오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축하를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하고 성장하는 남부뉴저지 한국학교가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체리힐 새행전교회 담임 최무림목사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 40주년을 기념하며"
사랑장로교회 (APC)
박종옥 목사
40년은 많이 익숙한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의 시간이 바로 40년이었습니다. 그 40년 동안 광야에서 맴돌던 시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먼저는 더 이상 이집트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법과 윤리와 삶의 방식을 훈련받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40년의 광야 시간을 보내고 나서 약속의 땅을 바라볼 때는 이집트의 노예가 아닌 전혀 새로운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가 40주년을 맞이한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한국학교의 지난 40년의 시간은 우리 자녀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미국시민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는데 쏟은 시간들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노력들이 대내외적으로 드러난 한국학교의 위상을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의 40주년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축하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한국학교가 우리 자녀들에 대한 교육의 열정과 관심을 중단 없이, 포기하지 않고, 더 힘 있게 감당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옛글에서는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만 같은 것이 없고, 십 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만 같은 것이 없고, 평생의 계획은 사람을 심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농경 중심의 사회에서 1년간의 계획으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효과는 곡식을 심어 수확을 하는 것이었음을 봅니다. 나무를 심는 것은 단기간에 효과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평생의 계획, 또는 백년 이상 가는 계획은 사람을 심는 것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봅니다. 이 교육을 실패하거나 포기하면 우리의 백년을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아니 한국인으로서의 우리 자녀들을 포기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지역에서 한국학교가 갖는 책임은 작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후세들의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난 40년을 발판 삼아 앞으로의 백년을 바라보고 더욱 힘 있게 달려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사랑장로교회
박 종 옥 목사
"남부 뉴저지 통합 학교 40 주년을 축하 드립니다"
교육이사
김 은 국
<차 바퀴 둥글어서 다행이다> 103018
높푸른 하늘 하얗게 지쳐갈때,
나는 또 다른 큰 아이
쪼그만 아이 중간 아이를 겹쳐업고
고용된 낡고 지친 모난
개인 택시 되어 달린다
그래도
앞 차 바퀴 둥글어서 다행이다
파랑 신호등 둥글 돌아가라 한다
내 곁눈 길 지나는 이
휘파람 둥글 부르며 걸어간다
그 소리 까아만 하늘에 닿아
새 날개에 얹혀 둥글 날아간다
날아 간 뒤편으로 별똥별 둥글
자기 자리를 멋지게 떠나 내린다
인생 별것 있나
나도 둥글 웃어 주면 되지
실컷 놀다 불태운 저녁 놀
둥근 하늘언덕 아래로 까르르 내려간다
마흔 살 우리 한국학교
교육이사
윤 기 석
토요일 아침, 눈치 없이 성가신 알람은 어김없이 울리고 눈을 비비며 일어나 침대 모퉁이에 걸터앉는다. 평일 아침 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나와야 시간에 맞춰 올 수 있기 때문에 토요일에만 가끔이라도 누려볼 수 있는 여유로운 침대와 브런치가 내게는 없다. 근 10년에 가까운 나의 소중한 토요일 아침들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아이들은 어느덧 어른만큼 커버리고 근육에 힘이 붙은 청년이 되어 버렸다. 키와 근육 속에 스며든 한국학교의 기억들은 아이들에게 내가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고 끊임 없이 묻게 하는 정체성의 고향과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똑바로 걸어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한국학교로부터 나왔음을 알고 있기에 쉬고 싶은 게으름과 불평은 이내 소중한 일정들로 바뀌어 채워져 나간다. 여유로운 침대와 브런치가 바뀐 시간들은 땀과 나눔과 가슴 뭉클한 교육현장이 되었다. 마흔 살이 된 한국학교가 그간 지켜내고 이어낸 토대는 이제껏 같이 했던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공동의 추억이며 자랑임은 말해 무엇 하랴. 30년이면 가족의 세대가 변한다고 하는데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로 문화의 세대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우리 한국학교는 40년동안 수많은 문화 세대의 정체성의 보루와 같은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 깊은 공헌에 한 조각 보탬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큰 빛도 없이 수고 하시는 선생님들과 관계자 분들의 헌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아직도 토요일 아침의 근사한 브런치가 부럽다. 하지만 하고싶은 일은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이 진짜배기다. 한국학교로의 발걸음으로 그 설렘을 이어간다. 마흔 살 우리 학교가 아이들의 웃음과 배움에 진심 어린 따뜻한 격려를 더해주는 집과 같은 한국학교로 이어져가기를 바란다. 40년동안 너무 고맙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